당신이 십 년 전 거대한 도약을 앞두고 내 책에서 길을 찾았다니 작가로서 그보다 벅찬 찬사는 없을 것이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한 조르바의 거친 욕정 앞에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당신의 시선이 그만큼 섬세해지고 성숙했다는 증거이니 결코 책을 잘못 읽은 것이 아니오.
조르바는 애초에 도덕적인 성자나 윤리적인 롤모델로 빚어진 인물이 아니오. 그는 대지에서 갓 뽑아낸 흙투성이 뿌리이자, 선과 악, 성스러움과 추악함이 날것 그대로 뒤엉킨 원초적인 생명력 그 자체요. 나는 펜대나 굴리며 책 속에 갇혀 있던 창백한 지성주의를 산산조각 내기 위해, 나침반 없이 오직 본능과 육체의 감각으로만 폭풍우를 뚫고 나아가는 극단적인 짐승을 무대에 세워야만 했소. 그의 다듬어지지 않은 여성 편력은 이성과 규범이라는 '점잖은 사슬'을 가장 노골적으로 조롱하기 위해 발산된 맹렬한 방종이오. 만약 윤리적 잣대로 그 본능을 거세하고 얌전하게 포장했다면, 조르바는 비둘기 흉내를 내다 걸음걸이를 잃어버린 가엾은 까마귀처럼 생명력을 잃어버렸을 것이오.
당신의 우려대로, 모든 권위와 차별을 해체하려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조르바의 구시대적 태도는 불쾌한 유물로 다가갈 수 있소. 시대의 도덕적 감수성은 진화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뿌리에 묻은 흙이 거북하다고 해서 그 줄기에서 피어나는 기막힌 자유의 꽃마저 외면해 버린다면, 우리는 결국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안전하고 무균질인 또 다른 사슬 속에 스스로를 가두게 될 것이오. 그 거북함을 뚫고 끝까지 페이지를 넘겨내는 자만이, 자신이 굳게 믿고 있던 현대의 세련된 규범마저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진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지 않겠소?
십 년 전 이 거친 에너지에 기대어 새로운 시스템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었던 당신은, 이제 홀로 견고하고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려는 새로운 인생의 궤도에 서 있소. 그렇다면 한 번 깊이 스스로에게 물어보시오. 과거의 당신을 낡은 틀에서 해방시켰던 조르바의 그 맹렬한 야성이, 치밀하게 미래를 설계하며 안정을 다지려는 지금의 당신에게는 어떤 새로운 형태의 질문을 던지고 있소?
혹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 숨이 턱턱 막히신 적 있으신가요? 머리로는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막상 용기를 내어 무언가를 바꾸기엔 두려운 마음이 앞서곤 하죠.
저 역시 그런 무기력함에 빠져있을 때 만난 책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였습니다.
오늘은 이 책을 읽으며 제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밑줄 쳐두었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던 조르바의 명언 9가지를 나누어보려고 해요. 생각만 많고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조르바가 던지는 시원한 돌직구,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 1. 돈과 욕망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사는 법 (자유에 대하여)
조르바가 말하는 자유는 거창한 철학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들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주도권에 가깝죠.
"이 개자식은 지갑을 꺼내어 터키 놈들에게서 빼앗은 금화를 주르륵 쏟아 내더니 한 주먹씩 공중으로 던지는 겁니다. 알겠어요, 두목? 이런 게 자유라고!"
"번 돈의 반쯤은 떼어 내어 아무렇게나 어디서나 마음 내키는 대로 써버리네. 내가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이 내 노예니까."
우리는 늘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정작 그 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배포는 부족할 때가 많아요.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겠다는 조르바의 태도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듭니다.
"하나의 정열에서 풀려나와 다른 더 고상한 정열의 지배를 받는 것. 그러나 이 역시 예속의 한 형태가 아닌가? (...) 우리의 지향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더 길어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훨씬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의 한계에 이르지 않은 채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자유일까?"
'더 나은 삶'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 스스로 더 긴 목줄을 차고 있는 건 아닌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문장입니다.
📚 2. 책상머리를 벗어나 진짜 '삶' 속으로 뛰어들기
우리는 종종 이성적이고 배운 사람일수록 우월하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조르바의 눈에 지식인(두목)은 그저 책 속에 갇혀 삶을 놓치고 있는 가여운 존재일 뿐이었죠.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백 번의 생각보다 한 번의 행동이 낫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던 구절이에요.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말보다, 펄떡이는 팔과 가슴(행동과 열정)을 보겠다는 조르바의 외침이 귓가에 맴돕니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실패할까 봐, 상처받을까 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삶이나 다름없습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허리띠를 풀고 문제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 3.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온전한 '나'로 행복해지는 법
조르바는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나를 구겨 넣으려 할 때, 다음 문장들을 꼭 기억해 보세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 이후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步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남을 흉내 내다가 진짜 '나'를 잃어버린 까마귀의 비유는, SNS 속 타인의 화려한 삶을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두목. 악마를 이기려면 자기가 악마 한 마리 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거친 세상에서 순진하게 당하고만 있지 말라는 조르바식의 투박한 위로이자 응원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 그러다 문득, 가슴속에서 인생이 마지막 기적을 완성했다는 것, 곧 인생이 한 편의 동화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결국 진정한 행복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순간의 자유와 자연스러운 사랑에 있음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 글을 마치며
<그리스인 조르바>는 단숨에 읽히는 가벼운 소설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안의 열정이 식어간다고 느낄 때, 남들의 시선에 짓눌려 숨쉬기 답답할 때 펼쳐보면 영혼에 뜨거운 불을 지펴주는 묘약 같은 책입니다.
생각의 감옥에 갇혀 계시다면, 오늘 하루쯤은 조르바처럼 "허리띠를 풀고 말썽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
이웃님들은 오늘 소개해 드린 9가지 문장 중 어떤 문장이 가장 마음을 때리셨나요?
